국내 첫 ‘경기대응완충자본’ 부과, 20조 자본적립 압박에 직면한 은행권 대출공급 줄이나

팬데믹 빚 부실화 대비 차원, 신용공급 저하 가능성 금융위 “적정 버퍼 수준 은행에서 자체 판단할 것, 자본확충은 불가피” 작년 국내 은행 당기순이익 총 18조5천억원, 전년 대비 1조6천억원 증가, 여력은 충분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사진=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가 금융 건전성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의 일환으로 은행과 은행 지주회사의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countercyclical capital buffer)을 위험가중자산 대비 1%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지난 24일 ‘금융위원회 제10차 정례회의’에서 나온 이 결정은 경제 리스크를 완화하고 은행권과 국민경제를 불리한 경기 변동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는 안전망을 강화하는 조치다.

지난 3월 금융당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급증한 여신의 향후 부실화 가능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금융위 의결을 통해 올해 2~3분기 중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번 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 및 지주사는 1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내년 5월 1일부터 1% 수준의 경기대응완충자본을 적립해야 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미 규제비율을 모두 상회하고 있는 만큼 (경기대응완충자본 부과 이후) 은행별로 버퍼를 어느 수준으로 관리할지는 예단이 어렵다”면서도 “다만, 산술적으로 은행권이 보유한 위험가중자산 전체의 1%를 경기대응완충자본으로 쌓을 경우 총 19조5천억원 수준의 자본적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경기대응완충자본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금융기관의 경기순응성을 완화하기 위해 글로벌 자본규제 체계 ‘Basel III’로부터 도입된 제도다. 신용공급에 따른 경기변동이 금융시스템 및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은행권에 위험가중자산의 0~2.5% 범위에서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신용경색 발생 시 자본적립 의무를 완화해 이를 사용토록 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적립 비율을 하향 조정해 과도한 대출 감소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위험가중자산(RWA, Risk Weighted. Asset)은 빌려준 돈을 위험 정도에 따라 다시 계산한 것으로 위험이 높을수록 가중치를 높게 적용해 산출한다. 은행권은 내년 5월부터 1% 수준의 경기대응완충자본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이 일정은 대부분의 국가가 따르고 있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의 기준을 따른 것이다. 위원회는 은행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경기대응완충자본 적립의무를 최대 12개월 전에 사전 공지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해외 주요국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유동성 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를 적극 활용하며 금융 안정성과 회복력을 확보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 금융당국은 2016년 해당 제도를 도입한 뒤 이제까지 0%의 규제비율을 유지해 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상향했다. 해당 제도에 따르면 당국은 최대 2.5%까지 적립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한국이 늦게나마 국제적인 트렌드를 따라간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결정의 배경과 근거

금융위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신용의 증가세가 둔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신용은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 경기순환완충자본 축적의 주요 지표이자 보조 지표인 ‘총신용/GDP 갭’과 ‘총신용 갭’이 높은 수준의 축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신용 공급, 즉 대출이 경제 성장률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로 잠재적인 경제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본 보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국내 은행의 건전성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2022년 말 국내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은 13.50%(은행지주회사 포함 시 12.57%)를 준비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이는 필요 수준보다는 높지만, 13.99%였던 2021년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여전히 규제비율을 상회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지난해의 금리 상승 및 환율 상승으로 인해 소폭 하락한 것이다.

특히 추가 자본확충을 위한 여건 또한 나쁘지 않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하는 등 은행권의 경영환경이 우호적이었던 점도 추가적 자본적립이 가능한 환경이라고 본 것이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총 18조5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6천억원 증가했다. 금융위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주요 리스크에 대한 손실흡수능력이 향상됨으로써 국내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대내외 신뢰도가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향후 영향 및 우려 사항

국내 은행들은 이미 규제상 최저 자본비율을 넉넉하게 웃돌고 있으나, 통상 규제비율보다 어느 정도 높은 수준으로 자기자본을 관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규제비율 상향의 영향을 받는다. 지난해 말 국내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은 13.50%(위험가중자산 가중평균)로 현행 규제비율인 7∼8%보다 높은 편이다. 한편 내년 5월부터는 해당 비율이 8∼9%로 상향된다.

이번 조치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주요 리스크에 대한 흡수 능력을 강화해 국내 은행의 건전성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지만, 잠재적인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요국 사례분석 결과, 은행들은 CCyB 부과 시 대출 등 위험가중자산 축소로 대응하기보다는 추가 자본적립을 통해 규제비율을 준수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결과를 기대하겠지만 최근 자본시장이 상대적으로 침체돼 있는 만큼 은행들이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내부적으로 나가는 돈을 단속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의 기대는 은행들이 성과급을 줄여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내년 5월을 앞두고 은행들이 대출 공급을 점차 줄이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간한 ‘2022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이 국내 17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증 분석한 결과 규제자본비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전체(가계·기업) 대출 증가율이 1.8%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도 있다. 이처럼 시행 과정에서 약간의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주요 리스크에 대한 손실흡수능력이 향상됨으로써 국내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대내외 신뢰도가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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