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춘투(春闘)의 계절, 사람은 MZ로, 투쟁 방식은 여전히 구닥다리식

노동조합, MZ세대도 적극 참여하는 경우 늘어 노동 쟁의 방식은 과거 ‘춘투’와 다를 바 없어 영·미식의 논리적 협상 가능한 인력 없이 노동 문화 개선 어렵다 지적도

춘투의 계절이 왔다. 매년 연봉 인상액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노조원들이 공장을 둘러싸고 파업을 무기로 사용자를 압박하고, 사용자들이 양보해서 연봉을 인상해주는 연례행사 같은 절차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됐고, 제조업계에서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행사다.

지난달 22일 서울 현대모비스 본사 1층 로비에는 울산, 창원, 충북 진천의 현대모비스 공장에서 상경한 생산직 노조원 100여 명이 점거 시위를 벌였다. 내용은 연말 지급된 성과급 300만원이 현대차의 4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위에는 머리띠를 두른 배 나온 아저씨들만 나온 것이 아니라, 20~30대 젊은 사무직 MZ세대 직원들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MZ세대도 뛰어든 노조 활동, 행동 방식은 여전히 머리띠와 팔뚝질

기존 노조의 투쟁 방식을 비판하며 2030세대가 만든 ‘MZ세대 노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부산관광공사 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 노조, 코레일네트웍스 노조,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 노조, LG전자 사람중심 노조, LS일렉트릭 사무 노조 등 8개 노조가 모여 ‘새로고침 노동자 협의회’가 출범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조합원이 무려 6,000명이 넘는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다른 시위 방식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현대모비스 시위에 참여한 MZ세대 직원들의 모습에서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는데 노조의 투쟁 방식은 바뀐 것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처럼 머리에 띠를 두르고, ‘노동가요’, ‘민중가요’ 등으로 불리는 노래를 팔뚝에 힘을 줘가며 부르는 모습은 1980년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시대가 50년이 더 지났고, 일제 시대를 포함하면 100년이 더 지났는데, 노조 시위 현장은 그 시절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 항공 인력 해고 반대 시위/사진=LaborNotes

해외 선진국에서는 노-사 협상은 학문적, 논리적 대화의 장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거친 스위스 AI대학의 이경환 교수는 영·미권의 노조가 길거리 시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미권에서는 회계 자료를 확인하고 임금 대비 생산성을 따지는 등 노조와 사측의 협상이 굉장히 학문적으로 훈련된 식자층의 대화로 이뤄지고, 경제학 전문가, 법학 전문가 등의 주요 학문 전문가들이 함께 토론에 참여해 적정 급여를 고민할 수 있는 논의의 장(場)이 벌어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영·미권도 처음부터 이렇게 노조 활동이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러다이트(Luddite) 운동’으로 알려진 기계 반대 운동을 하던 19세기만 해도 폭력적으로 집기를 부수는 노조 활동이 주류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에 대량 해고가 이어질 때는 런던 주요 도로인 ‘왕의 거리(King’s way)’를 팻말만 들고 조용히 이동하는 대규모 행렬이 있었을 뿐이다. 이어지는 노-사 협상에서는 사측이 얼마나 많은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과, 노조가 양보할 부분과 사측이 양보할 부분 간의 타협점을 찾는 내용이 핵심을 이뤘다.

국내는 여전히 음주가무와 소음이 이어지고, 논리적인 대화보다 노-사 양측의 고집을 정부 관계자가 개입해 타협을 주선하는 방향으로만 이어진다. 사측은 영업 중단 기간 동안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고 불평하고,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알려진 노조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 제한법이 통과된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반면 노조는 사측이 막대한 이득을 벌어가고 있으면서 노동자들과 이익을 공유하지 않다가 기업이 어려워지면 헌신짝처럼 내쫓는다는 비난을 이어간다.

목소리 크면 이기는 싸움, 언제까지 계속될까?

미국은 해고가 쉬운 대신 직원들의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 법에서 지정하는 1개월 이상의 해고 수당을 주는 경우가 흔하다. 시위에 나서는 직원들도 있지만, 대체로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노조 활동이 격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지나치게 경직된 노동법을 꼽는다. 쉽게 해고할 수 있으면 쉽게 채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해고에 대해 훨씬 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크면 무조건 이기는, 이른바 ‘길거리 싸움’ 양태로 노-사 관계가 지난 100여년간 이어져 왔다. 유사한 노동법 체계를 갖춘 일본에서 120여 명을 미국 방식으로 해고한 구글이 해고된 직원들의 길거리 시위에 놀라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가 있었다. “미국처럼 쉽게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고급 인력들이 시위에 나섰을지 다소 의문”이라는 내부 관계자의 반응은 구글이 일본 시장, 나아가 동아시아 시장의 노동법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외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사 협상에 ‘논리적 대화’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영·미권과 같은 수준의 합리적인 노-사 협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한국의 경우 노조뿐만 아니라 사측도 고급 지식을 소비, 생산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논리적인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해 결국 밀실 야합, 개인 간 금전 거래 등의 각종 비리가 이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놨다.

MZ세대가 주력 인력이 되면서 노-사 간 협상 방식이 좀 더 미국처럼 변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지난달 현대모비스의 시위를 “노동법이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닌가는 의문이 생기는 사건”이라며 “젊은 세대는 저렇게 노동 투쟁을 안 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어 일본 구글에서 해고된 직원들의 시위에도 “우리보다 사정이 나을 것 같았던 일본도 노조 대응이 다르지 않은 것은 문화의 문제일지 노동법의 문제일지 답을 얻고 싶다”며 변하지 않는 노동 쟁의 현장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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