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겪었던 그리스, 13년 만에 투자 적격 등급으로 올라서, ‘유럽의 병자’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부터 '유럽의 병자' 소리 듣던 그리스
S&P에서 투자적격등급 받아, 재정적자 줄이겠다는 정부 의지가 시장 설득한 것
향후 전망도 '안정적' 등급, 그리스 회복 청신호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부터 사실상 국가 부도 상태였던 ‘유럽의 병자’ 그리스가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투자적격등급을 받았다. 정부 채권이 투기(정크)등급으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부도 국가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그리스 판테온/사진=Getty Images

그리스, 드디서 ‘부도 국가’ 멍에 벗나

지난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S&P는 그리스에 대한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 ‘BB+’에서 ‘BBB-‘로 1단계 상향 조정했다. 이어 S&P는 그리스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Positive)’로 제시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BBB’ 등급은 부채의 안정성에 대한 최저 지표로, ‘BBB’보다 아래 등급의 채권은 일반적으로 부도 위험이 높은 ‘정크’로 불린다.

그리스의 키리아코스 미트소타키스(Kyriakos Mitsotakis) 국무총리는 SNS에 ‘BBB-‘ 등급으로의 신용등급 상승을 알리며 “그간 (국가 재무 상태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장이 인정해 준 것”이라며 “개혁을 지속해 투자를 유치하고 직업을 만들어 내고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압도적인 표차로 보수정당이 당선된 이유 중 하나가 우파 정부가 글로벌 시장에서 신용등급 개선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란 내부적인 기대가 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가 부채 과다로 유로존 전체로 위기가 확대됐고, 결국 그리스는 유로존 퇴출 압박에 시달렸다. 이에 3차례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존의 긴급 구제금융이 투입됐는데, 합계 금액은 2,900억 달러(약 390조1,950억원)에 달한다. 강력한 긴축 재정 요구가 이어진 덕분에 2018년 구제금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여전히 국채가 ‘정크’ 상황인 유일한 유로존 국가라는 불명예를 떨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코스티스 하트지다키스(Kostis Hatzidakis) 재무장관은 이번 S&P의 결정을 환영하며 지속적으로 건전 재정을 이어 나갈 것을 약속했다. 그러면서”안정적인 정치력 아래 건전 재정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맞이한 상황”이라며 향후 채권 등급 상향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췄다.

그러나 야당인 시리자(Syriza) 당에서는 미트소타키스 정권이 건강보험 포기, 교육 비정상화, 공공 인프라 붕괴, 노동자 권리 포기 등의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것이라며, 실질 임금이 감소한 만큼 국민 개개인의 복지 상태는 더 나빠졌다는 주장을 냈다. 이어 야당의 논평에서도 “국가 채무 등급이 아니라 생활 수준이 ‘투자적격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며 뼈아픈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유로존 전반적으로 그리스 상황 개선에 긍정적인 반응

그리스 구제금융을 담당했던 유럽안정화기금(ESM)에서는 이번 신용등급 상승을 “게임 체인저”라며 그리스의 향후 경제 상황이 안정적으로 돌아서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SM은 공식 논평에서 “이제 트랙 레코드(Track record)를 만들고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할 시점”이라며” 안정적인 투자 등급 국가에 대한 국제시장의 신뢰가 개혁에 대한 모멘텀, 재정 건전성 유지, 지속적인 시스템 현대화 등에 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S&P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더 감소할 경우 추가적인 신용등급 향상이 가능하다는 전망과 함께 정치적인 불안, 흑자 재정 장기 유지 가능성 등은 우려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올해 2.3%에 이어 오는 2024년 그리스의 경제 성장률은 3%대로 예상되는 가운데, 유로존 전문가들은 유럽지역 평균대비 2배 이상의 고속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와 피치(Fitch)는 여전히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정크 단계로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DBRS 모닝스타(Morningstar)는 투자 적격 등급은 BBB로 이미 상향 조정을 마친 상태다. 피치의 관계자는 오는 12월 1일에 그리스 재정 상황에 대한 재평가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주까지 그리스의 신용등급 단계/출처=TradingEconomics.com

‘그리스 병’ 회복의 열쇠는 강력한 우파 정책

글로벌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S&P의 선제적인 등급 상향이 향후 무디스, 피치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DBRS 모닝스타가 지난달에 BBB 등급으로 평가를 조정하면서 이번 달에 S&P가 평가 조정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시장에 널리 확산돼 있기 때문이다. 이어 유럽중앙은행(ECB)이 DBRS 모닝스타의 신용등급을 글로벌 신용평가 3사와 같은 레벨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다른 2개사가 이번 결정에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내놨다.

미트소타키스 총리는 자국 경기 부양을 우선 과제로 내걸고 규제철폐와 감세, 민영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계속돼 온 큰 정부와 방만 지출로 붕괴한 그리스의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취지다. 앞서 그리스 정부는 GDP 대비 부채비율을 2020년 206%에서 2027년 140% 밑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S&P는 이번 보고서에서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올해 말까지 146%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