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위기 버금가” 유럽 상업용 부동산 위기론, 우리 기관들도 ‘촉각’

유럽 내 중대형 부동산 업체들, 부채가 수익의 10배 넘어
신용등급 강등 피하려 자산 매각-배당금 삭감 나서기도
해외 부동산에 53조원 투자한 연기금 등 '막막'
스웨덴 스톡홀름 전경/사진=pixels

유럽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며 대형 건설사들의 손실이 커지자, 이들 건설사의 부채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부풀었다는 지적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상업용 부동산 위기 속에서 공격적인 해외 부동산 투자를 이어온 국내 연기금 및 공제회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2년 안에 유럽 내 부실 건설사 비중 50% 달할 것”

유럽중앙은행(ECB)은 연 2회 발간하는 금융 안정성 검토 보고서 발간 하루 전인 21일(현지 시각) 유럽 상업용 부동산 분석 내용을 발표했다. ECB는 이번 발표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 국가) 내 자산 규모가 1억 유로(약 1,413억원) 이상 중대형 부동산 업체의 평균 부채 규모가 수익의 10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 경제 위기가 불어닥친 2009년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ECB는 “기준금리 상승과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 하락, 임대 수입 감소 등 다양한 요인으로 부동산 업계의 손실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로존 내 부동산 관련 업체들의 기업가치는 불과 2년 사이 장부가의 110%에서 70% 아래로 떨어졌다. ECB는 “향후 2년간 긴축 기조가 지속되면 현재 26% 수준인 유로존 내 적자 부동산 기업의 비중이 50%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기업들의 수익 감소와 부동산 가격 하락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만큼 부실 건설사 비중 50% 도달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기업의 실적 악화는 부채 상환 능력 저하를 불러오기도 했다. ECB는 “유럽 부동산 업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는 은행의 대출 장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유로존 전체 은행 대출의 약 10%를 차지하는 큰 축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유로존 내 부동산 기업 가운데 약 40%가 신용등급 하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까지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사업을 펼쳐 온 기업들은 저금리 환경과 높은 수익성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구축돼 있어 급변한 환경에서는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체 구조조정도 ‘무용지물’, 위기 내몰린 기업들

경기 회복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빚 부담에 짓눌린 유럽 내 부동산 기업들은 자산 매각, 배당금 삭감 등 각자의 방식으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럼에도 일부 기업은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강등되거나 강등될 위기에 놓이면서 힘겹게 사업체를 유지 중이다.

스웨덴 부동산 기업 SBB가 대표적인 예다. 헬스클리닉, 학교 등을 사들인 후 지방 정부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공격적인 사업을 전개해 온 SBB는 금리 인상과 유럽 내 부동산 가격 하락이 맞물리며 이중의 타격을 입었다. 현재 SBB의 기업가치는 사상 최고치와 비교해 90% 이상 떨어진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회사의 신용 회복을 위해서는 80억 달러(약 10조1,576억원)에 달하는 부채 관리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현재 SBB는 신용평가사 피치사로부터 정크 등급을 부여받아 신주 발행 등이 무산된 상태다.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SBB의 사례를 보며 유럽 내 부동산 기업들은 더 큰 비용을 투입해 부채를 끌어오거나 신주 발행을 서두르는 등 유동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무리한 자금 융통이 수익 잠식을 앞당겨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심지어 유럽 내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많게는 40%까지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스페인 투자기업 맙프리의 한 펀드 매니저는 “유럽 내 건설 업체나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주가 상승을 가로막는 리스크들은 향후 수개월간 계속 시장을 강타할 것”이라고 말했다.

텅 빈 전 세계 사무실, 우리 기관들도 영향권에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비단 유럽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부동산 시장조사기관 CBRE에 따르면 올해 3월 전 세계 17개 주요 도시 중 뉴욕, 홍콩, 상하이, 런던 등 10개 도시의 공실률은 12.9%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기록한 최고치 13.1%에 근접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금융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 은행 대출의 약 80%는 지방 중소형 은행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올해 미국 금융권은 실리콘밸리은행을 비롯해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중소형 은행의 줄파산으로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위기는 국내에도 영향을 미친다. 해외 부동산에 약 40조원을 투자한 국민연금을 포함해 글로벌 팬데믹 진전까지 해외 부동산 투자 비중을 꾸준히 늘려온 국내 금융사들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면서다. 한국은행이 9월 발표한 ‘최근 주요 연기금·공제회 해외대체투자 현황 및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연기금 및 공제회의 6월 기준 해외 부동산 투자 잔액은 416억 달러(약 53조8,886억원)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상업용 부동산의 비중은 약 45%로, 복합 부동산까지 포함하면 무려 71%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들 연기금 및 공제회의 투자의 대부분이 중·후순위 투자에 해당해 투자자산 상환 순위 측면에서 위험도가 높다는 점이다. 잔존만기 5년 이상 투자 비중이 60%에 달하는 만큼 당장의 위험은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시장의 침체와 추가 하락이 예상되는 지금으로선 향후 회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전망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며 “투자금 조기 회수에 실패하면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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